권자영 개인전 목록

• 기간2016.02.10 - 2016.02.16
• 전시관제 3관
• 작가권자영

작가노트

내 삶의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달려왔다. 문득,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게 되었다.

존재의 본질에 대한 의문까지는 차마 다가가지도 못했고, 그냥 사는 게 뭐지 그런 생각.               

내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인데 언젠가부터 관계를 위한 우리의 시간이 되어버렸고, 한 번 사는 내 인생인데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타협하고 양보해야 한다. 그것이 삶인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뭔데? 그러다 보니 불평하고, 화를 내며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혼자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고, 내 인생의 본질과 마주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고독의 시간을 선택했다. 다른 사람이 보는 나와 내 자신이 바라보는 나는 다르다. 나는 어떤 나를 알고 있나.  

새로운 관점에서 나를 보니 내가 살아온 인생은 온통 후회와 미련, 분노와 절망이더라. 불평도 비난도 화를 내는 것도 대상이 있어야 한다. 혼자되어 대상이 없으니 공허함은 자책으로 이어졌다. 회의와 허무의 시간을 거쳐 자괴감은 내 자신을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내가 잘하는 것과 잘 하지 못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이 명확해졌다.

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내 시간은 나만을 위해 썼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작업했다. 그 자유를 위해 불편함과 궁핍함, 고단함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도 좋았다.

감정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게 되니 살아온 내 인생이 꽤 괜찮았음을 알게 되었다. 투정도 대상이 있어야 부린다.

나는 패션디자이너다. 옷을 만들다 보면 패턴에 맞게 오려내고 남은 소재들은 버려지기 마련이다. 필요에 의해 남겨진 부분은 의미가 있으나, 버려진 부분은 의미가 없다. 기능과 가치가 부여된 부분은 고유의 시간을 갖게 되지만, 버려진 부분은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경계선의 안과 밖은 자르는 순간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으로 나뉜다. 그런데, 원래는 하나로 이어져 있던 덩어리가 아니었나. 그렇다면 버려진 시간들을 모아 새로운 시간을 주기로 했다. 잘려나간 조각들, 오래된 재킷의 소매, 얼룩진 코트의 앞자락,,, 쓸모 없어진 것들을 이어 붙였다. 그렇게 여러 시간이 모여 잎이 되고 돌이 되었다.

물체의 시간은 기능하는 동안 존재하고 사용됨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기능이 사라지거나 의미가 희미해지면 각각의 물체가 지닌 시간은 정지되고 그 고유한 시간은 기억과 감정으로 남는다. 물체가 본래 갖고 있던 기능이 다른 상황에 놓여 그 기능이 사라지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되고,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물체들이 해체, 재 조합되어 새로운 문맥에 놓이게 되면, 그 과정에서 각각의 고유한 기억은 층첩하고 감정은 혼화되어 또 다른 시간과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전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은 서로 섞이고 쌓이며 흘러간다. 과거의 시간 위에 현재의 시간이 있고, 이전의 기억 위에 새로운 의미가 생겨난다. 그것이 시간의 공유이고 흐름이다.

작가소개

권자영은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섬유미술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의상디자인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상봉컬렉션, 모리스커밍홈 에서 디자이너 경력을 쌓은 후 프리랜서로 광고와 공연 의상을 담당했다. 2004년부터 덕성여자대학교, 동덕여자대학교, 홍익대학교 등에서 패션디자인과 소재에 관련된 강의를 하였고, 국내외 전시 활동 또한 활발히 하고 있다. 2009년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하여 개인 디자이너 브랜드 BLACKSHEEP을 전개하고 있으며, 일루셔니스트 이은결의 공연 가이드 디렉션과 의상디자인, 광고와 뮤직비디오 의상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