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영 개인전 목록

• 기간2017.08.09 - 2017.08.15
• 전시관제 1관
• 작가신혜영

<전시서문>

​함선미(예술학, 미술비평)

기억은 스스럼없이 현재를 파고든다. 애써 잊지 않기 위해 모아둔 기억들, 떨치고 싶지만 끝없이 현실에 매달린 기억들, 불현듯 떠밀려 다가오는 우발적인 기억들 모두 현재라는 시간을 꿰어 드러나기 마련이다. 신혜영의 작품은 과거의 기억들이 작동하는 방식에 중점을 두고 시작되었다. 한 때는 찰나의 순간에 오롯이 존재하던 상황들이, 이제는 다른 존재로 변형되어 그 흐름의 관계를 차곡하게 내보이려 한다.

우선 《Réminiscence》전에 소개한 작품들은 크게 작가가 소중하게 간직하던 과거의 사진에서 출발한 작품들과, 작가의 특정한 추억들이 서린 옷가지들에서 비롯하였다. 전자의 작품들은 과거의 특정한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선별하여 화면 속에 전사하고 그 위에 세월의 먼지가 쌓이듯 새로운 소재들을 더하거나 뒤덮으며 본래의 기록들을 희미한 형태로 내보인다. 또한 후자의 작품들을 통해서는 다양한 옷들이 여러 갈래의 실타래처럼 활용되어 서로 얽히거나 꿰매는 등, 노동의 과정을 거쳐 기이한 형상으로 변이된 화면들을 마주하게 한다.

이때 작품의 시발점이 된 사진과 옷들은 작가의 기억이라는 일관된 특성을 매개하여 보여주는 재료들이다.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이마주(image)’에 관한 개념을 살피면, 우리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방식이란 개개인이 현실, 인간, 사물 등의 모든 것들을 현재 안에서 축소의 시선을 거쳐 지각한 ‘이마주’의 총체임을 엿볼 수 있다. 작가의 경우 사진과 옷감이라는 사물을 기억을 소환하는 ‘이마주’로 한정한다. 그러나 작품은 기억이 지닌 과거에 대한 노스텔지어나 기록적 측면에 집중하기보다는, 현재로부터 침투하여 끊임없이 기억을 뒤흔드는 지각의 방식에 보다 주목하였다.

가령, <Hello, Mama II>에서는 사진을 전사한 화면 위에 여러 겹의 천과 실, 비즈 등의 재료가 엮이며 겹겹의 레이어가 쌓인다. 작품을 처음 마주하면 어떠한 풍경을 상기시킬만한 요소들도 보이지만, 이내 화면은 연상되는 것들을 어지럽히며 매체의 즉물성에 시선을 고정시키게끔 한다. 나아가 <The day I (100)>의 경우에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수놓인 실들이 픽셀화된 파편처럼 보이고 있다. 이 역시 어느 날의 선명했던 장면이 깨진 유리처럼 조각난 흔적으로 혹은 그 경계를 모자이크로 가린 모습처럼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우리가 기억을 꺼내는 과정들을 들여다보면 과거는 늘 현실 속에서 들여다보는 교류의 과정을 거치곤 한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의 상호작용을 통해 심리, 상황, 연상 작용, 왜곡, 강조 등의 과정을 자연스레 떠안게 된다. 베르그송의 시간의 존재방식에 대한 논의에서도 과거는 현재와의 공존으로 지속하고 있다. 즉, 신혜영의 작품은 서로 침투되어 드러나는 기억의 현재성이 작품에서 등장한 것으로, 사건의 흐름이 연대기적으로 명확하게 읽히는 것이 아닌 다양한 방면에서 분열적으로 발생하며 끝없이 현실에서 재편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결과적으로 작업은 <Réminiscence>의 작품 시리즈로 귀결된다. 작품은 작가의 사연들을 머금은 옷들이 기억의 실타래를 풀어나가듯 해체되고, 다시 현실의 행위 속에서 새로움으로 엮이는 과정을 직접적으로 재연한다. 이것으로 완성된 작업은 마치 세포가 끊임없이 복제하고 증식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더불어 끝없이 빨려들어 알 수 없는 차원으로 이어지는 블랙홀과 같은 형상들을 연상시키며, 기억을 통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장되는 지각의 틀을 은유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이렇듯, 신혜영의 작업은 현실 안에서 기억의 심연을 더듬거리듯 기록하였다. 그로인해 우리의 기억을 둘러싼, 나아가 우리의 지각을 둘러싼 것들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를 반추하게 한다. 이것으로 작가는 우리의 나약함을 마주하게끔 하지만, 동시에 현재 속에서 과거를 확장하고 끊임없이 이어가는 모습들을 통해 삶을 향해 열린 무한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