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하 개인전 목록

• 기간2017.03.15 - 2017.03.21
• 전시관제 1,4관
• 작가배정하

廣大無邊의 세계

- 배정하 개인전에 부쳐

하영준(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철학박사)

● 純白에의 동경

‘白’, 이것은 색인가? 아니면 색이라 할 수 없는 색일까? 나는 왜 흰색이 좋은지, 그 이유를 생각할 때마다 언제나 흰색의 신비함에 맞닥뜨리게 된다. 특히 흰 그릇, 조선의 백자(白瓷)를 아주 좋아 한다. 이러저리 생각하다 보니, 조금씩 그 이유를 알 듯도 싶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일상의 많은 순간들에 다채로운 색을 쓰고 있기에 도예에서 그 이상의 색을 추구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주위는 이미 화려한 색깔들로 범람하고 있다. 그래서 도자기는 흰색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색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궁극적인 표현에서 백자가 사랑받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색을 다 써서 그것이 극에 달했을 때 흰색이 된다. 이 신비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광대무변(廣大無邊)’이라는 말이 가장 걸맞지 않을까 싶다. ‘광대무변’이라는 것은 기쁨과 슬픔의 경계도 없이 서로 녹아들어 하나가 되는 세계,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펼쳐져 광활한 우주에 이어지면서 자신과 타인의 구별이 없어지고, 자연과 하나 되는 세계가 아닐까? 그런 경지로 우리를 이끄는 색깔이 백색이다.​ 백색은 시원(始原)인 동시에 종말(終末)을 표현하고, 탄생인 동시에 죽음을 품고 있다. 이것이 광대무변한 백의 세계이다. 이 백색은 무한한 색깔들이 농축된 결과로 백색이 된 것이다. 배정하 작가의 작품명제 ‘洛花 - 非色 ‧ 非空’에서도 알 수 있듯이 ‘非色’은 백자의  ‘광대무변’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배정하 작가는 최근 한지 콜라주기법을 이용한 백자의 ‘백색’과 ‘소박하고 담담한 형태’를 중심으로 조형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나 손의 궤적을 따라 만들어진 백자 표면의 ‘소박하고 담담한 형태의 아름다움’은 한지의 두꺼운 마티에르(Matiere)와 함께 자연의 원시적 생명력을 그대로 되살려 놓은 듯하다. 더군다나 백자에 표현된 모란 ‧ 물고기 ‧ 연꽃 문양들은 일반적인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광대무변한 우주의 본성을 알려주는 매개체로, 반복 ‧ 순응 ‧ 차이 그리고 매 순간의 고유성을 실현하는 영원회귀(永遠回歸)로서의 우주의 순환에 대한 깨달음의 표현이 아닐까?

● 洛花無言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 ‘전아(典雅)’품에서는 ‘낙화무언(洛花無言)’ 경계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떨어지는 꽃잎은 말이 없고[花落無言]

사람은 담백하기가 국화와 같다.[人淡如菊]

동양의 전통미학 가운데 ‘무언(無言)’의 아름다움은 최고로 숭상되었다. ‘무언’의 아름다움은 침묵의 방식으로 사물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언어’를 버리고 ‘하늘의 언어’에 도달할 경계로 ‘하늘의 언어’는 인간의 지식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 본연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장자(莊子)는 ‘천지에는 큰 아름다움이 있으나 말이 없다(天地有大美而不言)’고 했다. 장자는 아름다움을 두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나는 일반적인 아름다움으로 상대적 아름다움이다. 다른 하나는 도(道)의 아름다움으로 절대적 아름다움이다. 전자를 『장자』에서는 ‘소미(小美)’, 후자를 ‘대미(大美)’라고 부르고 있다. ‘소미’는 인간 이성의 시계(視界)에 속하며, 사람의 언어로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대미’는 인간의 이성이 미칠 수 없으며 인간의 언어로는 분별할 수 없는, ‘뒤섞여 하나[混沌]’가 된 아름다움으로 ‘무언’의 아름다움이다. 전자는 임시적이며 파생적이고 국한적이지만, 후자는 영원하고 본원적이며 무한하다. 전자는 인위(人爲)의 아름다움이요, 후자는 무위(無爲)의 아름다움이다.

천지는 ‘무언’을 아름답게 여기니, 사람은 ‘무언’으로 그에 응한다. ‘무언’이 ‘무언’의 큰 아름다움과 하나가 되는 것은 떨어진 꽃이 말없이 하나가 되는 것으로, 그 찰나(刹那)의 순간 아무 간격이 없이 담담히 하나가 된다. 이것이 바로 ‘무언’과 오묘하게 하나가 되는 경계로, 작가의 작품명제에서 말하는 ‘洛花 - 非空’이 아닐까?

● ‘백자’와 ‘떨어지는 꽃(洛花)’을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속내는 바로 인간과 세상의 충돌로부터 벗어나 우주의 원초적 생명력이 넘실거리는 ‘광대무변’한 세계로의 회귀(回歸)가 아닐까? 동양 예술의 오묘한 경지는 형식을 넘어선 ‘광대무변’의 세계에 있다. 형상은 다만 이 세계로 향하는 서곡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