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영 개인전 목록

• 기간2017.03.08 - 2017.03.14
• 전시관제 1,4관
• 작가이호영

<작가노트>

녹

오래된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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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억 하나. 강가에 의자가 있었다. 그 해 여름 홍수에 떠밀려온 듯 보이는. 돋아난 모래톱 위에 반쯤 묻혀진, 반 정도 상반신을 드러낸 의자. 바람이 지날 때마다 시립한 코스모스들이 흔들거리고. 팔걸이와 등받이가 붉게 녹이 든 의자. 흐르는 강. 작은 모래톱 위에. 의자의 정적 위로 바람이 지나고 있었다. 그 해 여름 태풍이 지나간 자리.

모래톱은 홍수에 쓸려내려 쌓인, 낯선, 물살의 궤적이 선연히 남아 있던 황량한 풍경들 속이었다. 그 해 태풍은 지독했고 많은 풍경들을 폐허로 만들었다. 파도에 밀려왔던 나무들의 잔해는 모래사장을 거대한 나무의 섬, 주검의 언덕, 시간이 정지한 황무지를 연출하였다. 강은 오히려 많은 것들이 쓸려 내려가 오히려 깨끗해 보이는 듯 한가로운 기운이 서린 정막의 공간이었다. 그 속. 정막을 뚫고 이름 모를 잡초 하나 자신의 몸을 피어 올렸다. 강물 소리 들리고, 의자는 그 풀의 배경을 차지하고 있었고. 발길을 멈춘 나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의자가 눈에 띄었던 것은 우연이었다. 강을 따라 하염없는 걸음을 옮기는 중 불현듯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한 낮은 더위를 피해 잠시 걸음을 멈추던 그 순간 눈빛을 자극한 생경한 장면이었다. 모래톱에 솟아오른 풀 하나. 나무형상을 한 잡초가 모래톱 위에 솟아난 그 풍경이 내 시선을 이끈 것이다. 지극히 평범했으나 평범하지 아니 했던. 의자는 그 잡초 너머에 있었다. 모래톱을 조금 올라야 볼 수 있는 그 자리에. 철제의자의 붉은 녹. 장마가 지난 몇 달 간의 시간을 말해 주듯 붉디붉은 녹은 의자의 한가로운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의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 공간 안이다. 강으로 난 길에 차를 세우고 커피 한 모금의 시간으로 문득 눈앞에 들어온 오래된 정원인 강. 그 강에 의자가 있었다.

지금 떠올린 의자의 기억은 수 년 전의 기억이다. 지금의 기억은 그 당시, 그 현장을 향하고 연결되어 있지만 지난 시간만큼의 망각들로 인하여 탈색되고, 왜곡되어 나타난다. 의자의 주변부의 풍경들이 기억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다른 풍경들로 형성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허나 선명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모래톱, 잡초의 피어남, 정막 속의 의자의 붉은 녹이다. 또한 그들이 만드는 정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풍경을 달리하는 것은 정원이지만 정원을 구성하는 구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하다. 지금 그 강가에 그 자리엔 사라진 의자와 지나간 시간들이 만든 다른 풍경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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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철의 시간, 지나간 과거 시간들, 세월을 보여주는 것, 녹이다. 녹은 시간이며, 인간 부재의 시간이다. 버려진, 오래된 정원을 형성한 시간들을 녹이 보여준다. 인간의 시간 속에서 녹은 불필요한 것들, 없애야하는 것들이다. 활동적인 인간의 공간에서 녹은 제거해야하는 것, 보존을 위하여 방지해야하는 것, 싸워야하는 것이다. 녹이 피어난다는 것은 인간의 관점에서 방치이며, 떠남을, 부재를, 버려짐을, 폐허를 의미한다. 폐허는 인간의 시간 속에 위치한다. 인간이 조성한 정원들, 도시들이 인간이 떠남으로 폐허로 진행된다. 자연의 입장에서는 복원되는 것. 그 복원은 인간의 시선에서는 폐허인 것이다. 폐허에서 녹은 피어난다. 인간이 살고 있는 현재의 공간에는 기름 치고, 닦아내는 것으로 녹은 피어날 자리,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녹은 인간의 손길이 멀어진, 인간이 떠나버린 공간, 그 공간 위의 철제 물건들, 그들 위로 피어난다. 폐허는 인간이 떠나버린 순간 만들어진다. 동시에 그 폐허 속에 많이 피어나는 것이 녹들이다.

폐허는 다름을 피어나게 한다. 다름의 욕망은 폐허 위에서 피어나는 녹과 같고, 꽃과 같은 것처럼 읽힌다. 어느 한 곳이 무너지고 스러진 위에야 만날 수 있는 녹들. 자연의 자리로 되돌리기도 함과 동시에 인간의 역사의 한 시간, 단면을 스러지고 지워짐 속으로 떠밀어 새 풍경과의 만남을 열망하는 의지를 표방한다. 녹들만 폐허 속에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꽃들도 녹들과 같이 피어난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버려진 전차 위. 그 위에 피어나는 녹과 꽃들은 같은 시간에 만나 다른 지점을 향하여 피어 있는 듯 보인다. 지난, 역사 속 철제의 녹들과 자연 본연인 꽃들의 만남은 가을 오후 한 나절을 같은 공간에서 피어 같은 하늘을 밝히고 있다.

3

고요한. 가을 들녘. 하늘거리며 피어있는 꽃들. 그들 사이. 피어나는 의자 위, 그리고 녹들. 녹의 질료, 색감은, 촉감은 하나의 시선에서 아름다울 수 있다. 또한 추할 수도 있다. 그러한 색감은 건조함과 더불어 화려할 수도 있다. 철의 주검을 의미하기도 하는 녹, 철의 부식은 다른 이질적인 것과의 결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것들 속에 녹은, 철이 가지는 차가움을 감추고 따뜻함을 드러낸다. 녹이 장식된 까페에서 커피 한 잔 해 보라. 커피 그 향기가 붉은 벽, 녹 안에서 얼마나 따뜻한지.

녹이 피어나는 것은 일정한 시간들이 흐른 뒤이다. 오래된 정원일수록, 인간이 살아온 시간이 긴 정원일수록 녹의 색감도 풍부해진다. 지나한 세월의 흐름을 녹의 색감이 표현한다. 오래된 정원은 폐허와 동시에 피어남, 생성을 같이 품는다. 태어남과 주검의 순환이 많은 시간 속에서 순례를 거듭한다. 그 되돌아 오가는 시간의 순례가 오늘, 오래된 정원을 아름답게 한다.

오래된 정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시간이다. 그 순환적 시간을 함축하고 피어있는 것들은 정원 안에 무수히 피어 있는 사물들이다. 그 사물은 꽃일 수도, 의자일 수도 있다. 그 중에 녹을 바라보는 것은 인간의 시간을 피어나게 하며 동시에 스러지게 하는 순간 나타나는 것, 드러내는 것이 녹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녹은 인간의 시간, 인간의 숨결, 주검, 떠남, 부재를 상징하고 피기 때문이다.

녹. 그러므로 오래된 정원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내 눈 앞에 있는, 수많은 시간들이 축첩해 놓은 우주의 시간, 인간의 시간이 만든 인간의 공간이다. 또한 현재의 공간이다. 이 오래된 공간은 너무 현재적이어서 지난 시간을 간혹 잊어버리기도 한다. 가을이 봄을 함축하고 있듯이 오래된 정원을 녹으로 장식하는 것은 살고자 하는, 피어나고자 하는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폐허 속에서 다름이라는 욕망의 꽃이 피어난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원, 내 맘에 쌓이는 붉디붉은 그리움의 녹, 오래된 의자 위로 오래된 바람이 분다. 나 없이도, 지금, 그 강엔 꽃들이 피어난다.

작가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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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 영 李 浩 榮(Lee, Ho-young)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석사)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박사과정 졸업

박사학위논문 〈《영원한 화두》·《화엄》에 나타나는 신체와 폭력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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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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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녹-오래된 정원’회화(바움아트갤러리, 서울)

2012 ‘물-오래된 정원’영상 설치 (블레시움갤러리, 용인)

2013 ‘꽃그늘’회화 (갤러리세인, 서울)

2014 ‘아리랑- 오래된 정원’영상설치(강릉시립미술관, 강릉)

2014 ‘길 안의 길’ 영상설치(2相 공간 두들, 서울)

2015 ‘길에서 길을 묻다- 오래된 정원’(강릉시립미술관, 강릉)

2015 ‘오래된 정원-월인천강’(철암탄광역사촌 초대, 태백)

2016 ‘오래된 정원-색즉시공’(철암탄광역사촌 초대, 태백)

2016 ‘오래된 정원-색즉시공’(4LOG, 서울)

2017 ‘오래된 정원- 푸른 기다림( 갤러리H,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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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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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흐르는 땅, 태백- 사미인곡’(철암탄광역사촌 초대, 태백)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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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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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유나이티드 재단 ‘우수작가상’, 재단법인 유나이티드 문화재단

2011 문화예술교류진흥회 ‘공로상’, 사단법인 문화예술교류진흥회

2011 2011한국현대미술작품전 ‘2011우수작가상’, 한국현대미술작가회

1993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 ‘우수상’

1993 한국현대판화가협회 공모전 ‘우수상’

기타

제20회 모란현대미술대전 운영위원, 제21대 한국미술협회 기획․정책위원회 부위원장, 제6회 경향미술대전 운영위원, 제 12회 신사임당 미술대전 운영위원, ‘단원미술제 2011안산’ 단원미술제 심사위원, 제27회 모란현대미술대전 운영위원, ‘단원미술제 2014안산’ 단원미술제 운영위원, 제 43회 강원미술대전 심사위원, 모란미술대전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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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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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회화협회, 한국미술협회, 전곡포럼, 한국조형예술학회, 미술학회, 예술과 지성, 영상미디어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