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선이 머무는 어떤 풍경이 있다.

흔들리는 차창 밖 아득히 멀어지는 대지, 그것이 사막인지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를 기억들, 위태롭게 매달려있는 나뭇잎, 창백하게 헝클어진 꽃잎, 은은한 저녁의 조명, 누군가 지나갔을 자리,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는 사물들...

때론 쏟아지는 어둠으로 혹은 빛나는 햇살로 가슴 속을 두드리는 풍경들이다.

이렇듯 나의 마음을 끄는 풍경들은 어느 순간 기호화 된 형상이나 색채, 이미지로 의식의 언저리에 남아 회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며 알맞은 순간에 나의 화면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호흡하듯이 반복되는 그리기와 지우기는 마치 파도가 똑같은 형태로 절대로 오지 않듯이 예측할 수 없는 우연적 현상을 남기며 채워지고 덜어진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기다림의 시간이 있다. 지루하지만 지긋하게 바라보며 말을 건네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그리는게 아니라 그림이 나를 이끌고 가는 것을 느낀다. 더이상 나자신과 다투지 않아도 되는 그런 순간이다.

작업노트-2

오늘의 하루는 그 전날의 변주이며 미묘하게 흔들리고 어긋나고 변화한다. 내게 작업은 이러한 불확실성 안에서 자신이 무엇에 이끌려가는지 바라보는 것이다. 그 시선이 더욱 깊어지고 따뜻해지기를 바란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내 삶의 풍경이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미끄러지는 일상속에서 감정의 고비고비 순간으로 밖에 존재할수 없는 우리의 삶이 연약하지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