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24살. 학부 재학시절 미대앞 화단에서 만난 해바라기.

내 키보다 훨씬 컸던 해바라기는 뜨거운 햇볕아래 미쳐 피어나지 못하고 봉우리진채로 말라있었다. 뾰족하고 뒤틀린 형상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한동안 슬프면서 아름다웠던 봉우리형상을 잊을수없었고 피지못하고 말라버린 형상을 반복해서 그렸다. 이후로 나는 꽃의 표정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꽃은 너무나 흔한 주제여서 꽃그림은 유치하거나 식상하게 여겨질수 있지만 그만큼 꽃은 우리 삶과 가까이 있는 주제이다. 뻔하고 흔한 일상이라해도 우리 삶의 모든순간이 의미가 있듯이, 꽃은 들여다볼수록 아름답고 매 순간 다른 얼굴을 하고있다. 그것을 그리는 것은 나에게 여전히 뻔하지않고 가장 즐거운 유희이자 휴식이고 위로이다

꽃은 예전부터 부귀영화를 염원하는 욕망을 드러내기도 하고, 에로티시즘 또는 페미니즘, 순결과 여성성을 대변하기도 하고, 반대로 죽음을 표현하기도하지만, 나는 이러한 일반적인 도상과 관념을 벗어던지고싶다. 꽃도 그렇게 의미지어지길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저 하나의 일생을 살아가는 것뿐인데 왜 나를 마음대로 평가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흔한것을 마음대로 평가하고 단정짓지만 사실은 알고있는게 그리 많지않다

나는 꽃 너,  그 자체로 보고 느끼고 표현하고싶다

꽃의 일생을 바라보는 것은 흥미롭다. 봉우리진 어린꽃이 점차 만개하고 절정의 시간을 지나 결국 시들어버리지만 매 순간의 표정과 몸짓은 모두 다르게 아름답다.

특히 수술이 다 떨어져가며 흐드러진 모습, 축 쳐져 시들었다가 말라가는 모습 속 아름다움이 내맘을 사로잡았다.

여리여리한 모습의 꽃도 가만 들여다보면 절실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뾰족한 그것을 바라볼때면 꿈속에 있는듯 하다.

수많은 주름속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겠지. 너의 이야기가 궁금해. 너의 이야기를 들려줄래

너는 절대 추하지않아. 애처롭지만 아름다워.

절정의 시간을 지나 마지막을 향해 치열히 살아가는 너의 모습을 내 그림속에 담고 싶어.

너를 들여다보며 대화하는 순간 펼쳐지는 너와 나의 공간에서

꿈결처럼 헤엄을 치고싶어

花以 畵爾 

꽃으로써 너를 그리다

그리고 나를 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