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총동문회

지난 전시

갤러리H

지난 전시

우지연 개인전 목록

기간2019.07.03 - 2019.07.09
전시관제 1,4 관
작가우지연

작 가 노 트

나는 예전에 샹들리에를 주요소재로 인간의 욕망, 과시주의를 그렸었다. 샹들리에를 비롯해 화려하고 메탈릭한 소재들을 질박한 한지에 표현하는 작업을 꽤 오랫동안 이어왔었다.

하지만 몇 년 전 하나 뿐인 동생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면서 붓을 잡기조차 힘든 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생명이 있는 것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라는 생각을 키워가면서 지난 날의 감정과 기억, 상처를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근래에는 “산”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다. 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생성과 소멸, 채움과 비움의 반복과정, 즉 순환을 이어가는 생명력 넘치는 곳이며 어떤 비밀스러운 기운을 간직한 세계이다. 나는 “깊고, 짙은”이라는 단어와 너무 잘 어울리는 산을 나의 내면과 세상이 만나는 하나의 삶의 장 또는 존재론적 장으로 바라본다.

나의 작업의 근간은 반복과 쌓음인데, 이 반복의 개념은 산의 외형적 모습이나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시간적 흐름에서도 포착된다. 예를 들어 나뭇잎과 그것이 이루는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시간 흐름 속에서도 그 반복은 어떤 규칙적 운율을 머금은 채 그들만의 미감을 뽐낸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이와 같다. 이런 반복적 흐름 속에는 다양한 행위와 희노애락의 감정들뿐만 아니라 삶의 불가해성과 무한복잡성의 모습들도 담겨있다. 궁극적으로 이 모든 반복의 흐름 자체가 호흡하며 살아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또 "호흡하며 살아있는 모든 것은 유연하다”라는 측면을 조형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외부의 흔들림에도 유려한 곡선의 형태로 균형을 잡고 있는 오브제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문득 찾아낸 것이 버드나무의 잔가지를 축 늘어뜨린 형상이었다. 그 자유로운 선들이 만든 집요한 과정의 구축적 결과물에서 생명과 호흡을 보았고,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가 있어야 땅에 내동댕이쳐지지 않고 흔들림만을 유지하면서 지탱할 수 있다는 것에서 우리들의 삶의 모습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자연의 일상적인 모습들에 경외감을 느꼈고 이런 부분을 질박하고 흡수성이 뛰어난 한지 위에 반복적인 채색작업으로 생명의 연속성을 표현하고 싶었다. 나는 전통적인 재료인 한지죽을 기본으로 하여 반복적인 채색과정을 통해 깊이 있는 색채 심미를 추구한다. 이런 방법적 추구는 나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근본적인 기질의 표출일 것이며 이 안에 보여지는 쌓여짐의 미학, 겹겹의 모습들 또한 생명력 있는 자연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한지죽이라는 재료를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한지죽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입체성과 물질성이 가진 매력 때문이다. 더불어 내구성, 질박함,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흡수성과 깊이감 등 물질이 주는 순수성과 진실성이 있으며 자연친화적 아날로그의 특징을 가진 재료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지는 예로부터 인쇄매체로 기록을 해온 곳이다.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색으로 쌓아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희노애락, 바램, 간절함 등 복잡다단한 마음을 담아 한지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렇듯 한지 위에 반복적인 채색을 통해 레이어를 쌓아가는 표현방법은 “반복적 행위(형태) 안에서 나오는 미(美) 탐색”이라는 작업 개념과도 연결되어 있다. 나의 작품은 평면적이고 단조로운 시각적 특징을 보이는 미니멀 회화와는 차별화된, 물성을 극대화한 촉각적인 특징이 있다. 바라건대 고리타분하고 뻔한 그림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전통재료를 통해 현대적 미의식이 독특하게 발현되길 바란다.

순간순간, 한 단계 한 단계의 과정이 쌓여져 지금에 이른 것과 같이 과거의 생각과 마음, 그 순간의 기록들이 겹겹의 색으로 쌓여져 간다. 점점 더 농도가 짙어지면서 말이다. 이런 반복적인 작업과정은 고된 노동인 동시에 나에게는 치유의 시간이며 과정이기도 하다. 더불어 감상자에게도 사색적 분위기를 더해 자신만의 “色 다른 空間”을 구축하고 누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