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총동문회

지난 전시

갤러리H

지난 전시

진우혜 개인전 목록

기간2019.07.17 - 2019.07.23
전시관제 1,4관
작가진우혜

작가노트

삶에 속한 우리는 죽음을 기분나쁜 불청객처럼 여긴다. 그래서 죽음을 웬만해서는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죽음은 삶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삶이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영겁과 같은 시간의 눈으로 본다면, 우리는 태어나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죽음 가운데서 삶을 잠시 빌린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삶을 낳고, 삶을 귀하게 만든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 삶이 주는 행복에 다다른다.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은 그런 우리의 삶을 요약하는 말들이다. 생로병사가 우리의 외부에서 닥쳐올 수밖에 없는 사건이라면 희로애락은 그 사건에 대해 우리가 내적으로 받아들인 결과이다. 우리는 자신 또는 누군가의 삶, 늙음, 아픔, 죽음에 대해 기뻐하거나, 분노하거나, 슬퍼하거나, 즐거워한다. 어디선가 누구든 죽어가고 있으며, 그만큼 누군가가 태어나고 있다. 우리는 그 사건들을 마주하여, 마치 조개가 진주를 품듯 때에 따라 가지각색의 빛깔로 된 감정을 빚는다. 자기 꼬리를 문 채 동그랗게 몸을 만 뱀처럼, 죽음과 삶이, 슬픔과 기쁨이 맞닿아 돌아가고, 우리는 그렇게 죽음을 통해 삶을, 슬픔을 통해 기쁨을 느낀다.

첫번째 스토리에서는 이러한 삶 속 나날에 흐르는 감정들의 아름다움을 빛깔로 표현하려 하였다. 빛깔은 빛을 받은 물체 표면에서 그 빛의 파장에 따라 특정 색채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빛깔의 의미는 우리가 삶이라는 빛을 쬐며 그 스펙트럼 속에서 면면이 느끼는 다채로운 감정과 비슷하다.

그리고 이런 다채로움을 나타내는 중심소재로는 우리나라 전통의 고급 장식용 소재인 천연자개를 사용했다. 천연자개는 빛이 비추이는 각도와 형태에 따라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광채를 낸다. 부조 작업에서는 팽팽한 사각의 틀 속에 생명의 꿈틀거림과 같은 원들의 움직임을 표현하였다. 이 원형은 어머니의 몸 속 아이와 닮았으면서도 틀을 깨고 나오려는 운동성 또한 가지고 있다. 그 결과 작품 한켠에는 정말로 자개와 함께 생명력이 흘러나온다.

투명한 다이아몬드 형태의 자개판은 우리가 햇살을 볼 때에 그 빛이 다이아몬드 모양처럼 부서진 형태로 보이는 데에서 착안했다. 각각의 자개판은 온전한 개인처럼 자신만의 다채롭고 아름다운 빛깔을 품고 있다. 그리고 이런 자개판을 엮어서 이어붙였을 때, 개인의 색깔은 바래지 않으면서도 서로 조화롭게 공명하는 사회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죽음에서 시작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이 작업은 삶과 그 행복에 대한 이야기이다. 길게 늘인 우리의 과거와 미래가 죽음에 걸쳐 있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의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바퀴처럼 돌아가는 섭리 속의 고통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를 둘러싼 오늘에 마음을 다해 감사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갖춘 빛깔을 행복으로 갈고닦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 빛깔을 온전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들도 그 삶만큼 아름답고, 나 역시 그들로 말미암아 아름다워질 수 있으므로. 그렇게 우리의 모든 순간이, 삶이라는 빛을 받아 모든 각도에서 선연히 빛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