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생활 도자기 1세대 도예가인 이윤신 동문에게 그릇이란 음식이 담겼을 때에 비로소 완성되는 하나의 용기(容器)이다. 소박함과 세련됨이 공존하는 그녀의 그릇은 세계적인 요리연구가 장 조지 봉게리히텐(Jean-Georges Vongerichten)이 진행하는 요리 프로그램 ‘김치 크로니클(kimchi Chronicles)'에서도 사용되어 “한국의 그릇”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멋스럽고도 실용적인 도자기 그릇을 손으로 직접 빚어 우리나라 식문화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있는 이윤신 동문, 그녀를 만나보자.

도예가 이윤신은 그릇을 빚기 위해서는 우선 그릇 본연의 가치 즉 ‘쓰임’을 먼저 생각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조형미와 기능을 매우 섬세하게 조화시킨 그녀의 그릇은 우리의 자연을 닮아 소박하고 그 형태와 빛깔이 부드럽고 따스하며 은은하다. 마치 잔잔한 산들바람이 말을 걸어오듯 자신만의 감성과 조형감각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그녀에게 그릇은 남들에게 아름답게 평가받기보다는 어떠한 뽐냄 없이 모든 음식을 포용하고 빛나게 하는 용기(容器)이다. 나아가 맛있는 음식을 담아내어 식탁에서 가족들과 함께 정을 나누게 하는 일상생활의 매개체이다.

● ●   제가 생활 도자를 만든다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도예가라면서 겨우 그릇?” 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고이 두고 감상하는 것은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사용하는 그릇은 단순한 생활용품이라는 거죠. 하지만 저는 도자그릇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실용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릇은 기본적으로 음식을 담아내는 용기(容器)잖아요. ‘좋은 그릇’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음식을 얼마나 아름답고 맛깔나게 담아내느냐가 아닌가 생각해요. 저는 그릇을 빚기 위해 우선 그 쓰임을 생각해요. 그리고 그릇을 빚는 과정에서 도예가 본인의 개성이 발현되어야 해요. 여기서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조형미가 나타나죠. 이렇게 만들어진 그릇이 예술적 가치의 유무로 평가되는 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일 뿐이에요.

모교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그녀는 손으로 빚은 전통도자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며, 여전히 전통을 경외하고, 그것을 일상에서 지켜나가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과 함께 생활 도자기에 대한 신념이 더욱더 확고해진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이윤신의 도자기 - 이도>를 설립하고, ‘수공’이라는 이도만의 원칙을 세운다. 수공이야말로 시공간을 초월한 진정한 아름다움을 완성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녀는 천천히 한발자국씩 그리고 품격 있게 아름다고도 쓰임이 있는 그릇을 빚어낸다.

● ●  유학시절 겪은 일본의 그릇 문화는 우리나라와는 많이 달라 놀라웠어요. 당시 우리나라 식탁에서는 급격한 산업화 흐름에 따라 도자기 그릇 대신 기계로 대량 생산하는 스테인리스나 플라스틱 용기를 쉽게 볼 수 있거든요. 하지만 일본은 옛날부터 내려온 도자기 기술을 바탕으로 직접 손으로 그릇을 빚고 일상에서도 흔히 사용하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작품이냐 그릇이냐를 떠나 그릇 그 자체를 예술로 바라봐주는 모습이 참 좋았어요. 이처럼 일본 유학을 통해 더욱 확고해진 그릇에 대한 제 신념은 귀국 후 생활도자를 만드는 ‘이도’를 설립하게 했어요. 또한 수공이야말로 전통 도자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지속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라는 생각에 하나에서 열까지 수작업으로 그릇을 직접 빚어내는 원칙을 세우고 지금껏 변함없이 지켜오고 있어요. 따라서 이도의 모든 그릇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져 모양도 크기도 조금씩 다르지만 기계가 결코 대신 할 수 없는 멋과 맛이 담겨 있어요. 항상 제가 먼저 디자인을 하고 프로토타입(제작물의 기본형)을 만들면, 숙련된 테크니션들이 이를 그대로 하나하나 빚어내는 공정으로 제작되고 있어요. 그 과정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아요. 흙과 유약 그리고 더 나아가 그것을 유통하는 모든 방식이 굉장히 까다롭고 복잡해요. 밥그릇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십 여일의 시간이 걸려요. 심지어 그릇의 검수 과정을 소홀히 할 수는 없어요. 언제고 제 그릇이 누군가의 식탁에 올라 그들의 삶을 더욱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만들어줄 귀중한 시간을 정성을 다해 준비하지 않을 수 없죠.

음식을 아름다고 맛깔스럽게 담아내는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살아 있는 예술품을 만들기 위하여, 평생을 이도에서 도자를 빚으며 살 것이라 예상했던 그녀는 새로운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가업이었던 ‘W-MALL'을 이어 받아야 했고, 이 동문은 유능한 사업가로 변신해야만 했던 것이다. 예술가와 사업가, 너무나도 다른 두 가지의 역할을 함께 잘 해나가야 했기에 그녀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평생 꿈꾸며 빚어왔던 이윤신의 도자기 이도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예술과 사업에는 함께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교집합이 있었던 것이다.

● ●   제가 비록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하긴 했지만 자라난 집안 환경은 그렇지 않았어요. 제 아버지는 지금의 ‘W-MALL’을 있게 한 모태, ‘원신월드’를 만드신 사업가셨죠. 그리고 자연스럽게 집안의 독녀인 제가 가업을 물려받게 되었어요. 예술과 경영은 너무나 다른 분야이기에 ‘원신월드, W-MALL’ 사업을 시작한 초창기에는 제 정체성에 대해 혼란이 많았어요. 또한 W-MALL을 이끄는 사업가와 저만의 그릇을 빚는 도예가로서 어느 쪽에 중심을 둬야 하는지 혼란스러워 고민이 참 많았어요. 그러나 일에 직면해보니 W-MALL도 이도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 운영하고 있는 이도의 공간인 ‘이도아르쎄(YIDO ARTCE)'는 ART와 CERAMIC의 약자로, 제 예술과 문화 사업을 아울러 만든 복합문화공간이에요. 이도아르쎄 가회본점, 이도아르쎄 강남점 두 곳과, 전국의 신세계 백화점, 압구정 갤러리아 본점에 각각 입점해 있죠. 이도아르쎄 가회본점은 이도의 모태라고 할 수 있어요. 이도가 작은 공방에서 기업이 되는 출발점이었죠. 이곳에는 도예 아카데미와 이도가 런칭한 카페인 ’카페 드 세라, Cafe de Cera', 이도의 도자는 물론이고 다양한 도예가들의 그릇을 만날 수 있는 샵, 요리법 및 감각적인 테이블 세팅을 배울 수 있는 ‘YCC(yido culinary center)' 그리고 좀 더 가볍게 선물하거나 캐쥬얼한 상품군으로 구성된 ’이도 기프트 샵‘, 마지막으로 다양한 예술의 범주를 보여주는 ‘이도 갤러리’로 구성되어 있어요. 지난 해 12월에 강남에 문을 연 이도아르쎄 강남점도 비슷한 구성이에요. 다만 이도의 그릇을 통한 식문화를 더욱 고급화 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렇게 해서 런칭하게 된 ‘세라즈마노, Cera's Mano'에서는 정성껏 마련한 정갈한 음식을 제 그릇들에 담아내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그릇 판매샵과, 도예 아카데미, 쿠킹 클래스인 ycc사 있죠. 앞서 저는 이 두 곳을 복합 문화공간이라고 말했는데, 고급문화를 만들어고 향유하고자 하는 제 뜻이 담겨있죠. 최근에는 음악과 함께 브런치를 즐길 수 있도록 ‘세라즈마노 마티네 콘서트’를 열기도 했어요. 매주 목요일 인디밴드의 공연이 이루어지고 옥상에서는 루프탑 파티가 진행 되요. ‘이도아르쎄’는 다양하고 품격 있는 문화콘텐츠를 한 공간에서 경험하고 즐김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에요. 이런 이도에서의 경영 경험을 W-MALL에도 활용하여 예술을 통한 감성 마케팅을 시도한 결과, 현재 W-MALL도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옷을 사는 아울렛이지만 이도의 감성을 더해 뮤지컬 공연이나 도자기 공예 강좌 등과 더욱 고급스러운 문화예술 마케팅을 접목하여 고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어요.

남다른 생각으로 남다른 학창시절을 보냈던 이 동문을 성장하게 한 배경으로 모교인 홍대가 있었다. 홍대는 예술인들을 위한 자유로운 학풍을 자랑한다. 이러한 모교의 품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키워나갈 수 있었던 그녀는 모교 후배들의 등 뒤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모교와 그녀와의 소통은 ‘그릇’에 대한 꿈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 ● 홍대의 자유로운 학풍 속에서 지냈기에 자유롭게 제 그릇을 빚으며 성장할 수 있었죠. 만약 제 개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면 과연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요? 확신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이제까지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이 사실을 깨달은 지는 얼마 안 됐어요. 뒤늦게나마 이에 보답하기 위해 4년 전부터 ‘이도 상(賞)을 만들어 우수한 실력을 가진 후배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어요. 이 사을 통해 저는 후배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젊은 감각을 보며 상생하는 거죠. 이것은 또 다시 이도로 연결되기도 하구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고 했던가. 이윤신 동문의 그릇은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과 한국의 전통미를 현대적 감각으로 살려낸 현재에 살아 있는 예술 그 자체이다. 그녀는 이러한 자신의 도자기 그릇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식탁에 올라가는 것을 꿈꾼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일상의 아름다움을 빚고 있을 이윤신 동문의 세계로의 비상을 함께 꿈꿔보자

● ●  W-MALL과 이도를 경영하는 사업가이자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그릇을 빚어내는 도예가. 이 두 가지 모두 현재 제 모습이 맞지만. 제가 죽을 때까지 불리고 싶은 말은 ‘회장님, 대표님’이 아닌 ‘도예가’예요. 저는 그릇을 만드는 사람이고 제 꿈은 오직 하나, 전 세계 식탁 위에 이도 그릇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도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몇 년 전부터 글로벌 시대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는데 주력 하고 있어요. 올 여름 여주에 생산 공장이 완공됩니다. 이도는 그릇의 기능과 아름다움을 계속해서 조화롭게 이루어 나갈 겁니다. 또한 수작업 형태도 끝까지 고집할거고요. 수공예 도자기는 겉보기에는 투박하지만 음식이 담길 때 조화를 이루며 따뜻함과 아름다움이 배어 나오죠. 제 그릇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보통의 아름다움’을 목표로 세계로 뻗어 나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