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 토끼를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 모양도 색도 너무나 다른 두 개의 꿈을 잡은 사람이 있다. 박희진 동문, 그녀는 디자인이 좋아 디자인을 업으로 삼았고, 스키가 좋아 2014 소치 동계 올림픽 스키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올림픽 첫 출전에 예선 21위, 비록 결선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하였고 즐겼기에 부끄럽지 않다며 그녀는 환하게 웃는다.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두 개의 꿈을 향해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그녀만의 반짝반짝한 꿈 사냥기(記)를 들어보자.

○● 스키에 입문하다

어린 시절 타본 스키에 대한 좋은 기억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간 모교 스키 동아리에서 처음으로 짜릿한 경쟁과 성취감을 맛보며 나의 스키 인생은 시작되었다. 당시 스키 동아리는 한국대학스키연맹을 통하여 전국 대학에 있는 스키부와 활발한 교류가 있었고, 또한 2부 스키 선수로서 여러 스키 대회에 출전하기도 하였다. 이 때 홍익대학교 대표라는 자긍심과 승리 후의 짜릿한 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으로 내 가슴을 터질듯이 꽉 채웠다. 이것은 내가 이제까지 해왔던 디자인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색다른 경험과 감동이었기에 더 크게 내게 다가왔다. 디자인은 어떤 절대적인 기준을 잣대로 우열을 평가할 수 없는 세계인데 반해, 스키는 정확한 규칙과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있고 그 속에서 경쟁하여 얻는 승리의 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굉장한 것이었다. 그 때부터 스키는 내 평생의 에너지 충전소가 되었다.

○● 프리스타일 스키 하프파이프에 빠지다

처음 알파인 스키로 입문하여 약 7년 동안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나는 아마추어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장비 지원까지 받으며 훈련해 왔다. 그러던 중 알파인 스키와 많이 다른 모굴스키를 배우러 일본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프리스타일 스키 하프파이프’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렇게 에너지 넘치는 스키가 있었다니! 첫 눈에 반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나이가 이미 28살이었는데도 다시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하는 것에 나 스스로 많이 놀랐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하고 싶으면 꼭 해야 하고, 또 안되더라도 도전하고 보는 성격이라 바로 배워보고 싶다며, 무작정 하프파이프로 뛰어 들었다. 프리스타일 스키는 스피드와 기술을 겨루는 알파인과 달리 곡예 중심의 전혀 색다른 종목이지만 다년간 알파인 스키로 다져진 기본기 때문인지 금세 익숙해졌고, 나는 곧 프리스타일 스키 만의 짜릿한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 올림픽을 꿈꾸다

모든 운동선수에게 목표이자 꿈인 올림픽! 하지만 나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스키 선수를 병행해오던 평범한 사람인 내가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국가대표선수로 올림픽에 출전 하게 될 줄,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나의 올림픽 출전이라는 꿈같은 이야기는 프리스타일 1세대 스키어이자 국가대표 코치인 친구로 부터 국제 대회 출전을 권유 받고, 2013년 3월 스페인 월드컵에 출전하여 19위라는 의외의 좋은 성적을 기록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다시 말해서 스페인 월드컵 성적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소치 동계 올림픽 예비 엔트리 명단에 내가 포함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남은 국제 대회에서 포인트를 쌓으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자비로 오직 올림픽을 목표로 국제 대회에 출전하여, 마침내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 명단에 박희진이라는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 소치 올림픽 경기장에서 하프파이프를 마주하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무한한 자긍심과 감격으로 입성한 소치! 그러나 소치 올림픽 경기장에서 마주한 하프파이프의 상상 이상의 스케일에 순간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보며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평소 강심장이라는 평을 많이 듣던 박희진은 어디론가 간데없고 한국에서 훈련하던 하프파이프보다 무려 네 배에 달하는 올림픽 하프파이프 크기에 압도되어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숨길 수가 없었다. “나는 내 다리와 스키를 믿어!”이러한 주문 덕분인지 예선 경기 1차를 무사히 마치고 게이트로 들어서던 순간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아, 내가 올림픽 무대에서 결국 잘 해냈구나.”라는 벅차오르는 감격에 쏟아지는 눈물을 꾹 참고 있는 내 앞에 함께 경쟁한 세계적인 선수들이 나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서있는 것을 보는 순간, 그냥 눈물을 펑펑 쏟아 버렸던 것이다. 그들은 “여기 있는 것 자체가 너는 이미 위너(winner)다. 넌 틀림없는 한국의 자랑이다.”,“넌 최고야”라며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격려해 주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울컥하는 감동이 느껴진다.

○● 다시 디자이너 박희진으로 돌아오다

디자이너 일과 스키 훈련을 병행하면서 시간과 체력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스키를 타기 위해 다른 친구들처럼 대기업에 입사하지 않고 작은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고는 있지만 작은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고는 있지만, 오너라고 해서 지시만 내릴 수가 없다. 그래서 스키장에서도 밤새 일하고 새벽 5시에 훈련 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국제대회 출전 때는 비행기, 이동하는 차량, 숙소 등 가능한 한 모든 장소에서 노트북과 핸드폰을 이용하여 서울 사무실에 있는 것처럼 일했다. 이렇다 보니 체력적으로 무리가 오게 되고, 서른을 넘긴 나이의 한계와 종목 자체의 위험 때문에 무릎인대, 골반, 어깨 등등 크고 작은 부상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올림픽을 끝낸 지금 돌이켜보니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뿌듯한 감격이 밀려온다. 지금은 잠시 스키에 대한 사랑을 접어놓고 디자이너 일에 집중하고 있다. 기업 클라이언트에게 의뢰받은 크고 작은 각종 디자인 프로젝트 뿐 아니라 2010년부터 꾸준히 맡고 있는 ‘김연아의 아이스쇼’ 시각물 디자인 총괄 디렉팅 때문에 한창 바쁘다. 또한 작년에 홍콩에 론칭하면서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 나의 디자인 브랜드인 제인앤지니(Jane&Zini)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 새로운 비상을 꿈꾸다

디자인과 스키는 내 삶이다. 앞으로 나만의 브랜드를 성공시키기 위한 디자이너로서의 열정과 스키어로서의 질주는 계속 될 것이다. 스키 선수로서 최종목표가 있다면? 평창? 올림픽 메달? 아니다! 물론 평창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면 더 없는 영광이겠지만 그때가 되면 내 나이 마흔, 우리나라 프리스타일 스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가능성 있는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 보다는 아직 성공하지 못한 고난이도의 기술인 플레어(옆으로 도는 공중동작)와 파이브(540도(한바퀴 반)회전)에 그랩(공중에서 손으로 보드의 날을 잡는 자세)을 정확히 넣는 기술을 멋지게 성공시켜 후배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스키어로서의 목표다.

나는 잘난 사람도 특별한 사람도 절대 아니다. 단지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며 열심히 또 열심히 하는 행복한 삶을 사는 한 사람일 뿐이다. 홍익 동문들에게 말하고 싶다. 세상에 맞춰 살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말고 도전해보자. 힘들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성취해 나간다면 더욱 우리들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 질 것이다. 물론 어려움은 있다. 그러나 용기 내어 도전하고 또 도전하자. 최고가 되지 않으면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