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리빙스턴을 아는가? 리처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의 주인공 갈매기의 이름이다. 갈매기는 모두 날 수 있다. 그러나 리빙스턴은 단지 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진정한 자유와 자아실현을 위해 고공비행을 연마한다. 우리는 이 사대의 리빙스턴과 같은 영화감독 엄태화(광고디자인 54) 동문을 만났다. 그의 첫 장편영화인 ‘잉투기’로 영화인과 네티즌의 극찬을 받으면서 영화계의 새로운 인재로 주목받고 있는 엄 동문. 최근에는 동생 엄태구 배우와 함께 류승완·류승범 형제에 비유되며 대중의 기대를 사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더 큰 비상을 준비하는 단계에 불과할 뿐,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엄 동문의 영화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자.

∞  어릴 적부터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모교에서는 광고 디자인을 전공했죠. 휴학 중애 학교 선배의 소개로 영화 ‘몽정기’의 미술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영화 현장을 직접 접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제작 과정을 직접 보며 점차 영화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었고, 학교를 졸업한 저는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 ‘쓰리, 몬스터’와 ‘친절한 금자씨’ 의 연출부에서 본격적인 영화 연출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때, 현장에서 감독님의 열정적인 모습에 ‘나도 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확고한 의지와 열망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 저의 첫 영화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과 더불어 장애인 복지에 대한 문제점을 다룬 ‘선희야, 노올자!’라는 13분짜리 단편영화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불안전한 우리 사회와 인간의 모습을 담은 ‘선인장’등 다수의 단편영화를 제작하였는데, 하면 할수록 영화를 보다 더 전문적으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갔고 이곳에서 소위 독립영화라 불리는 영화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독립영화는 이제까지 제가 해왔던 단편영화들과 비슷한 성향이라 그다지 낯설지 않았고, 곧 독립영화의 매력에 빠져 본격적으로 제작에 뛰어 들었습니다.

∞ 이쯤에서 대중의 이해를 위해 독립영화의 개념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네요. 독립영화는 수익성에 초점을 맞춘 일반 대중들이 선화하는 상업영화와 달리 감독 자신의 사상, 예술성, 철학을 담아내는 것에 중점을 둔 영화입니다. 즉 상업영화가 자본에 의존하여 돈이 되는 상품력으로 포장된 영화라면, 독립영화는 그러한 경제 논리에서 ‘독립’한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독립영화 중에는 자연스럽게 저예산영화가 많습니다. 그러나 저예산영화라고 해서 모두 독립영화인 것은 아니에요. 단순히 제작비용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감독이 얼마나 영화에 자신의 철학을 잘 담아냈느냐가 독립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

∞ 독립영화 ‘잉투기’는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장편 제작 지원 제도로 탄생한 저의 첫 장편영화입니다. 저는 이 시대의 소외되고 무기력한 청춘들의 도피처이자 해방구인 <인터넷 세상의 병폐와 그 현실>을 솔직하게 영화에 담아보고 싶었고, 이를 위해 여러모로 조사하던 중 우연히 잉투기 대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잉투기 대회는 레슬링과 격투기 해설가인 천창욱님이 인기 웹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의 ‘격투기 갤러리’에서 네티즌들이 댓글로 서로 싸우고 헐뜯는 모습을 보고, 모니터 뒤에 숨어서 싸우지 말고 오프라인에서 직접 겨루어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자는 의도로 개최한 대회입니다.

∞ 저는 잉투기 대회를 직접 보고나서 이런 사실이 단순히 흥미 위주로 다루어지고 희화화해서는 안 될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영화 ‘잉투기’를 본격적으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잉투기를 ‘잉여들의 격투기’로 설명하고 있는데, 사실 ‘ing 투기’, 즉 ‘싸우는 중’ 이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우리 세대는 수능 성적에 따라 대학을 가고, 졸업을 거쳐 취업이 되면 결혼하는, 사회적으로 정해진 루트에서 벗어나거나 따라가지 못하면 주류에 반하는 잉여, 즉 나머지 혹은 낙오자로 취급되어 기성세대의 질타를 받아 왔습니다. 아마 잉투기 대회의 참가자들은 그러한 소외된 삶의 외로움과 울분을 토해 내며 세상을 향해 싸움을 거는 것이 아닐까요? 이들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고, 나아가 우리 세대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표현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우리 젊은 청춘의 초상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 잉투기의 일반적이지 않는 결말에 대하여 많은 분들이 질문을 합니다만,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여러 동문들을 위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때론 사람들은 영화를 보며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 합니다. 이 때문에 보통의 격투기 영화에는 주인공이 시련을 겪고 싸우다가 결국에는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는 이야기 공식이 일반적이죠.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그런 극적인 승리가 얼마나 가능할까요? 저는 기왕 현실의 우리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영화를 만들기로 한 이상, 영화 속 현실도 결말도 미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며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처절하게 겪는 세상과의 싸움과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에 대해 진한 여운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과 같은, 혹은 자신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을 보면서 위안을 받고 용기를 얻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그런 영화가 되었으면 합니다. 잉투기에 대한 많은 관객들의 관심과 긍정적인 평가도 이러한 제 바람이 통해서가 아닌가 합니다.

∞ 제 영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배우이자 제 동생인 엄태구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제 영화 인생에서 동생 태구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어서, 또는 영화를 찍다보니 배우가 필요해 동생을 시켰냐고 물어보시는 분이 계신데, 사실 동생이 먼저 배우 일을 시작했습니다. 태구는 7년간 스크린과 TV단역으로, 조연으로 활발히 활동했고, 요즘은 인상에 남는 배우로 주목받고 있어 더없이 기쁩니다. 아무튼 형제가 각자의 길을 가다가 결국 영화판에서 만나게 된 거죠. 지금은 서로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 영화감독은 배우에게 원하는 연기를 끌어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배우의 내면세계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감독과의 교감을 끄집어내야 하죠. 이 과정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태구는 태어나서부터 함께 해온 제 동생이라 누구보다도 형인 제가 그의 내면을 잘 알기에, 배우를 이해하는데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었고 또 만족스러운 연기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미래에 동생이 헐리우드에 진출해 너무 바쁜 나머지 제 영화를 거절하는 날이 오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감독과 배우로 함께 할 생각입니다.

∞ 영화는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시간을 때우기 위한 오락거리라고 누군가는 치부할 수도 있지만, 영화는 분명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즉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대변하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기도 하며, 우리 스스로 꿈을 꾸게 만듭니다. 앞으로도 저는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는 꿈, 그 꿈을 피우는 진솔한 영화를 만들고자 항상 노력할 것이며, 이를 위해 더 많은 관객들과 소통하며 다가갈 것입니다. 모두가 눈앞의 작은 가치에 매달리지 않고 자신만의 꿈과 이상을 간직하고 실현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에 홍익 가족 여러분도 동참해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