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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원 동문 (조소68-75)

관리자 │ 201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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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리얼리즘 조각을 추구하며, 자신만의 인체조각 양식을 창출하여 한국 조각계의 새로운 지평을 연 조각가 김영원(조소 68-75) 동문, 그는 고희(古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 술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작업하며, 예술로서 이 시대와 호흡하고 있는 진정한 예술가이다. 조각가 김영원의 쉼 없이 달려온 예술인생, 그리고 그에게 있어 정신적 고향인 홍익대학교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 보자.



●  평생의 선배님의 조각예술을 보면 인간에서 시작되고 변화해오며, 지금도 지속적으로 인간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인간이 작품의 중심에 있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나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병석에 누워 계시다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외갓집으로 돌아가버렸기에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랐죠. 언젠가부터 여느 보통의 가정과 다른 우리 집을 인식하고, 나는 누구인가부터 시작해서 부모님에 대한 생각, 나아가 학교,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과의 관계성속에서의 나와 타자에 대하여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것 같아요. 불우했던 유년기와 성장과정에서 무의식 깊숙이 내재된 인간에 대한 기억,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 지금 생각해보면 인간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어린 시절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  그렇다면 선배님이 생각하시는 인간이라는 개념을 조각 예술로 본격적으로 표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학교 3학년 때, 무언가가 터져 나가는 의미가 담겨있는 용접을 해서 만든 추상조각인 ‘파열’이라는 작품으로 문교부가 주최한 대학미전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내 마음속 깊이 내재되어 있는 응어리가 터져 나가는 것을 형상화해서 만든 것이었죠. 많은 사람들이 “김영원이라는 추상조각을 하는 신인이 나타났구나.” 하고 기대를 했는데, 군대를 다녀오면서 180도 달라졌어요. 새벽마다 보초를 서면서 지루했던 시간들을 오롯이 내 작품에 대해서 생각을 하며 보냈던 거죠. 그 당시 팽배했던 다다이즘 즉, 전통에 대한 부정을 말하고 다녔던 나를 되돌아보며, 전통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과연 우리의 전통은 무엇인가, 왜 우리는 남의 역사와 문화를 가져와서 우리 것인 양, 또는 그것을 해야만 이 시대를 앞서 나가는 것인 양 생각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반문하고 또 반문했던 것 같아요. 그때 결심을 하게 되었죠. 이 시대에 필요한 올바른 정신을 가지려면 전통을 기반으로 한 현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며, 현실은 나, 즉 인간으로부터 시작되고, 인간으로 귀결된다는 것을요. 그러므로 인간, 즉 내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  당시 한국 현대 조각의 대세였던 추상적 경향의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한국적 사실주의 인체조각을 고집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시 우리 사회상 자체가 ‘합리주의’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합리적인 것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은 사실주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양은 이데아를 바탕으로 표현한 이상적인 사실주의였지만 나 는 현실을 바탕으로 한 극히 현실적인 사실주의를 하자고 결심했습 니다. 그 내용은 바로 내가 살아온 길, 또한 현재, 이 시대 속에서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였죠. 그래서 통제되고 억압되던 그 당시의 시대를 이야기하기 위해 무언가에 매달린 극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인간의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손자국 하나 없는 냉정하고 차가운 모습으로 사물화 되어가는 인간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곧 나의 모습이기도 했어요. 소외되고 억압되었던 나의 모습, 즉 나는 태어나서부터 출구 없이 그저 가까스로 매달려 살아왔었고 점차 물질화 되어가는 나의 모습. 이것이 저의 사실주의 인체조각의 시작인 ‘중력 무중력’ 시리즈입니다.


●  중력 무중력 시리즈를 이어 ‘조각-禪’ 작품을 발표하시면서 선배님의 삶과 조각 예술에 있어 중요한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중력 무중력 시리즈와 같이 항상 시의성(時宜性)있는 현대인간 실존주의적 작품을 해오다보니 민중미술을 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는데, 1980년대 중반 민주화의 물결로 혼란하고 급변하는 사회의 변화 속에서 스스로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절박한 생각 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타난 것이 내가 생각했던 합리주의를 깨뜨리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동안 해왔던 중력 무중력 시리즈 작품들을 과 감하게 해체하고 그 파편들로 다시 작품을 만들어 냈죠. 그런데 이렇게 지금까지의 나를 부정하고 나니 내 몸과 마음이 망가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절망의 늪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 이때 방황하는 나를 보고 한 친구가 선(禪)을 권유해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선(禪)과 기공 명상의 수련 과정에 몰입하게 되면서 시간과 공간도 결국 우리가 만들어 놓은 관념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모든 것이 불분명해지며, 사람 만드는 조각이 하기 싫어 졌어요. 그래서 흙을 쌓 아 선(禪) 수행과정을 춤 행위로 승화시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더 적극적으로 직접적으로 나를 표현하고 타자와 소통하고 교감하기를 열망했습니다. 이것이 ‘조각-禪’의 시작이었습니다. 1994년 상파 울루 비엔날레에서 흙기둥을 세워놓고 기공, 명상의 과정인 선 춤을 추며 하나의 조각품을 완성하는 과정을 퍼포먼스로 보여주었더니, ‘비엔날레 최고의 작가’라는 상파울로 비엔날레 총감독인 넬손 아퀼 라로부터 기대 밖의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  IT시대로의 대전환으로 문화적 격변하는 새천년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현대 인간의 내면적 변화와 근원적 원리를 찾고자 ‘Shadow of Shadow’ 시리즈를 발표하기 시작하셨는데요, 현재 종로의 랜드마크가 된 홍익대 대학로 캠퍼스에 기증하신 ‘Shadow of Shadow’ 작품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조각-선 시리즈의 인체조각을 계속 작업해오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알 수 없는 존재다’ 라는 근원적인 의문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누구나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죠. 그렇기에 타자뿐만 아니라 내 스스로도 다양한 얼굴, 다양한 나를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되었죠. 여기서 나타나는 나와 나, 나와 타자, 타자와 타자 간의 간극은 소통하지 않으면 결국 출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대학로 캠퍼스에 설치된 Shadow of Shadow 작품을 보시면, 작품의 앞면도 뒷면도 없어요. 물론 옆면도 좌우가 없고요. 누구나 어디서나 보는 면이 정면이 되죠. 형태도 다 달라서 어떤 것은 절반만 있고, 어떤 것은 모두가 있고, 또 어떤 것은 추상적입니다. 어떤 존재든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고 열려있으며, 어떤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계속 보다 보면 결국은 자기중심으로, 자기 내면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결국은 나의 중심을 바라봐야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즉 나를 알고 나를 인정해야지만 타인과의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며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상적인 소통과는 다른 차원의 소통이죠.


●  2013년 구상 조각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세계적인 조각가인 노벨로 피노티(Novello Finotti)와 2인전을 개최하며,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셨는데요. 이것은 교수님의 작품이 국제적 보편성과 세계적 인지도를 획득했음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2012년, 우리나라 조각의 수준이 어느 정도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고 생각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보기 위해 이탈리아 조각의 심장부이자 조각의 도시인 피에트라산타(Pietrasanta)에서 ‘한국 현대조각전’을 열었습니다. 이 전시에서 이탈리아의 국민 조각가이자 세계적인 조각가인 노벨로 피노티(Novello Finotti)가 우연히 내 작품을 보고 함께 전시회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왔고, 흔쾌히 승낙을 하면서 이탈리아 파도바시(市)에서의 피노티와의 2인전을 계획하게 되었죠. 그런데 이탈리아는 외국작가의 작품이 들어오게 되면 시의 심의를 통과해야하는데, 이 심의 과정에서 시의 문화 인사들이 내 작품을 보고 ‘조그만 화랑에서 전시할 작품이 아니다’라 며 내년 파도바시의 문화행사의 하나로 도시 곳곳에 전시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새로운 제안을 해와 일이 커지게 된 것입니다. 실내 전시 작품 30점, 야외 전시용 대형 작품 13점이 파도바 시청광장, 스크로베니 예배당, 에레미타니 시립미술관, 저크만궁, 파도바시립미술관, 라테카 화랑 등 파도바 시 전역에 80일간에 걸쳐 전시되었는데, 이탈리아 및 세계적인 언론에 보도되며 이전의 그 어떤 해외 전시보다 화제가 되었고, 현지 반응도 좋았을 뿐더러, 작품은 오페라재단(Fondazione Opera Immacolata Concezione) 중앙광장에 영구소장되는 영광도 누리게 되었어요. 이것은 오롯이 작가간의 교감으로 시작되고, 이뤄진 것이라고 할 수 있어, 그 의미가 남달랐습니다.


●  서울의 랜드마크로 거듭나고 있는 DDP(동대문디자인프라자) 곳곳에 ‘Shadow of Shadow’시리즈를 전시하게 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대단히 큰 프로젝트입니다. DDP에 예술을 입혀 새롭게 거듭나려는 시도로 내 작품이 선택되어, 전시제안이 왔을 때 촉박한 시간과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곧바로 수락했어요.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Zaha Hadid)는 DDP를 ‘환유의 풍경’이라고 했는데, 나는 항상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거든요. 나는 환유의 풍경 속에 인간이라는 직접적인 매체를 더하여, DDP를 제3의 공간으로 창조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요즘 내 집 드나들 듯이 DDP의 곳곳을 탐색하며 공간을 해석하고 있어요. DDP라는 공간이 오롯이 내 안으로 들어와야지만 내 작품과 더불어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전시가 9월이라 요즘 밥먹을 시간도 없이 전체 기획과 작품 제작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DDP와 어우러져  DDP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을 17점의 대형 작품들이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하모니를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  홍익대 대학로 캠퍼스에 8m의 대형 작품을 기증하시고, 이번에 홍익대학교 총동문회에도 일천만원이라는 큰 돈을 동문회 발전기금으로 기부하셨습니다. 교수님의 모교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보이는데요, 홍익대학교는 교수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올 초에 홍익대 총동문회에서 <2015 자랑스러운 홍익인상> 대상이라는 영예로운 큰상을 주셨습니다. 사회 각계각층의 훌륭한 동문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이런 큰상을 주셔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홍대는 내게 정신적인 고향입니다. 앞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나는 출생부터 돌아보자면 자랑스럽게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나는 홍익대에 입학하고, 홍익대에서 공부하고, 홍익대학을 졸업한 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내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을 유일하게 인정해주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해준 곳이 바로 홍익대학교였죠. 그리고 그러한 홍익대학교가 있었기에 지금의 조각가 김영원이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내 후배나 제자들이 홍익대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로 성장 하여, 학교와 총동문회가 융성하길 바랍니다. 앞으로 작은 힘이나마 최선을 다하여 홍익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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