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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주 개인전 목록>
  • 기간2021.07.07 - 2021.07.13
  • 전시관갤러리 H 2관
  • 작가이범주

안소연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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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화된 풍경은, 한 사람의 몸에 밴 임의의 풍경을 특정한다. 그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면서, 동시에 실제적인 시간의 축적을 필요로 한다. 말하자면, “체화된 풍경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축적 속에서 한 사람의 몸에 남겨진 여분의경험이며 재현하기 어려운 신체의 감각에 근접해 있다. 이범주의 그림은 대개 그러한 체화된 풍경과 관계 맺고 있으며, 구체적인 형태들이 나타나 보이지만 그것을 지탱시키는 그림 내부의 구조가 관심을 끈다. 그가 자주 다루는 숲의 풍경에는 인물의 형상들이 간혹 편집하듯 아주 작게 중첩돼 있어, 그 풍경에 대한 사실적인 접근 보다 주관적인 재해석이 강조되어 있음을 가늠하게 한다. 요컨대, 이범주의 개인전 사십 대, 서성거림에서 한 눈에 알아차릴 수 있는 풍경에 대한 그의 관심은, 대개 체화된 풍경으로서의 표상을 그림 안에서 다루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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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주의 그림에서는 그의 시선이 (먼저) 느껴진다. 사실 그림에 그림 그린 이의 시선이 드러난다는 것은 남다른 게 아니다. 이 당연한 일을 새삼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범주의 풍경 그림에서 보이는 구조 때문이다. 그것이 또한 그가 풍경을 바라보는 구체적인 방식이기도 한데, 가만히 보면 발 밑의 얕은 풍경에서 시작해 (수직적인) 그 아래 혹은 (수평적인) 저 너머로 옮겨가는 시선의 비약적인 변화가 엿보인다. 이를테면, <천 개의 노을>(2021)은 발 밑의 초록색 풀과 마른 땅의 경계가 만들어진 듯한 풍경에서 시작해 땅의 붉은 기운이 감싸고 있는 저 먼 풍경 너머로 시선을 사라지게 한다. 화면의 구도로 본다면, 마치 옛 동양화의 관습처럼 시선을 아래에서 위로 굽어 올라가면서 그림 너머로 사라지게 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그게 풍경 속에 서 있는 작가의 발 밑에서 시작하는 시점이며, 그곳으로부터 비약적으로 뻗어나가는 시선의 움직임 혹은 변화를 환기시킨다.

   어쩌면 그가 발 밑의 풍경을 관찰하면서 그림의 구도와 풍경화에 대한 시각을 나름대로 구축해 보려 했던 것은, <고사리와 새순과 솔방울 3>(2019)를 순지에 먹과 분채로 그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였던 게 아닌가 싶다. 그것은 그의 체화된 감각에서 비롯되었다. 이범주는 자연에 대한 근원적인 경험이 삶 속에서 가깝게 체험된 적은 크게 없다. 그가 그의 유년 시절을 포함해 삶의 전반에 걸쳐 자연과 가까이 지냈던 남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숲을 매개로 한 자연 풍경을 주로 그림 그리는 이유는, 자연에 내재해 있는 중첩된 감각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그는 숲에 굳건히 서 있는 고목이나 왕성하게 성장하는 녹색 식물들 보다 몸체에서 탈락해 땅에 떨어진 솔잎이나 솔방울 등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이면서 만들어낸 형태와 공간감에 주목했다. 과거에, 그가 <고사리와 새순과 솔방울 3>에 대한 작업 노트에서 이 그림에는 나의 무심한 발 그림자가 그늘져 있다고 말하면서 생명을 잉태하는 자연의 품 속에 대한 경험을 고백했고 그것이 자신의 그림을 구축하는 데 있어 하나의 출발점임을 명확히 했다.

   <나는 나이지만 결코 나만은 아니다>(2019)를 보면, 그 후의 변화를 헤아리기 충분하다. 그가 숲에서 발을 내딛었을 때, 솔잎 아래로 움푹 파묻힌 공간은 소소한 개체들의 무덤 같은 퇴적층을 상상케 하면서 어떤 것의 역사, 어떤 것의 기억, 어떤 것의 죽음 등을 비약적으로 떠올리게 했다. 떨어진 솔잎이 얼키설키 쌓여 숲의 지면을 비현실적으로 직조해낸 자연 현상을 참조하여, 이범주는 그것을 추상적이면서 유기적인 회화적 공간의 논리로 재해석해 자신의 그림에서 특유의 공간적 배경을 이루게 했다. 이범주는 먹선을 이용해 솔잎이 직조한 추상적이고 유기적인 공간을 화면에 그려냈고, 그 그림 속 추상적인 풍경 내부에 오래된 과거의 기억을 중첩시켜 놓았다. 그것은 자신의 학장 시절 졸업 사진을 비롯해 유년의 가족들이 머문 시공간을 보여주면서, 사진으로 박제된 사라진 시간에 대한 향수를 불러왔다.

   <숨죽인 시간>(2021)은 채화된 풍경을 조금 더 시적인 상상력으로 아우르며 은유적인 태도를 강조한다. 화면을 감싸듯 꼼꼼하게 그려 넣은 강아지풀이며 여러 잡목들과 대비되게 그림 한 가운데로 마치 빛이 강하게 반사됐든가 풍경이 느닷없이 뚝 끊어진 것처럼 텅 빈 공간을 그려 놓고, 그 화면 앞뒤의 극단적인 간극을 가로지르며 어중간 하게 자리 잡고 있는 얇은 먹선의 전깃줄을 보자. 그는 분명 그림 앞에 서 있는 이들의 시선을 그곳에 모으려 했던 것 같다. 그 먹선이 묘사하는 전깃줄의 추상적인 구조는 시각적으로도 그림 안에서 어떤 공간감 혹은 거리감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그 가는 선 몇 가닥이 시간과 공간으로의 무한한 증폭을 상상케 한다. 사라진 시간을 환기시킨 솔잎의 구축적 힘과 향수 어린 옛 사진 속 역사의 환영처럼 말이다. 그것은 다소 추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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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대, 서성거림에서, 이범주는 스스로의 태도에 대해 서성거림이라 말한다. 삶의 한 주체로서 겪는 생애 주기의 보편적 화두를 전복시킨 듯한 이 태도는, 불혹(不惑)이라는 단단한 말이 그 안에 함의하고 있는 흔들림”, 서성거림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말하자면, 미혹되지 않는다는 말은 주체의 내부에서 흔들림의 부재를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거다. 삶의 의혹들 가운데서 흔들리지 아니한다는 말일 테다. 그런 넌센스 같은 역설을 가지고, 이범주는 불확실한 풍경을 그림으로 옮겨 그 불확실성에 대해 성찰하는 시지각적 태도를 보여준다.

   <Bottom up d-purple>(2021)은 이범주 그림 특유의 솔밭 풍경을 가늠하게 하면서 동시에 추상적인 그림으로서의 사유를 촉발시킨다. 예컨대, 가로로 긴 이 풍경 그림은 가장 먼저 식물의 이파리라는 익숙한 형태를 지각하게 하고 서서히 쉽게 보이지 않는 형태들을 드러나게 한다. 그가 주로 먹선으로 그려내는 솔밭 풍경의 추상적인 패턴이 식물의 이파리들과 함께 그림의 표면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붉은 색의 물감이 이 재현적인 형태와 추상적인 패턴을 일괄 전면 회화의 균질한 표면으로 엮음으로써, 회화의 2차원적인 감각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범주는 대부분 그래왔듯 그 회화 전면의 균질성을 촘촘하게 직조하는 대신 그가 직접 경험했던 솔밭의 풍경처럼 느슨하게 엮는 방법을 채택해 상이한 시공간의 중첩을 꾀하는데, 그것이 추상적인 사유에 대한 긴장감을 불러온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하게 쌓인 솔잎 더미들을 발 아래 두고, 그것의 불확실한 형태를 추상적인 윤곽으로 변환시킨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성찰은, “불혹서성거림의 변증법적 절차 속에서 사유의 형상을 구체화 한다. <Bottom up d-green>(2021) 또한 마찬가지다. 솔잎 더미가 이루는 솔밭 풍경은 이미 기하학적인 추상의 패턴으로 변환되어 있고, 그것을 배경 삼아 솔방울과 작은 식물의 이파리들이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추상적인 회화의 2차적 환영의 공간은 그가 작업의 출발점에서 직접 겪었던 자신의 발 아래, 자연의 품 속 같은 비정형의 또 다른 시공간을 일깨운다. 그는 자신의 시선과 나란한 풍경이 아닌 발 아래의 풍경에 주목해 오면서, 그림의 평면적인 공간에서 깊이감을 체감할 수 있는 명분을 경험한 것 같다. 그것은 체화된 풍경에 몰두함으로써 가능했으며, 그것을 중첩된 감각에 의해 인식함으로써 회화 자체에 대한 (은유적) 실험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의 그림은 풍경에 대한 개인적 서사를 담고 있지만, 그것이 표현의 기법이나 형식과 무관하지 않다. 체화된 풍경으로서 그가 다루는 회화의 대상은 사실 구체적인 대상이기 보다는 감각이라 말할 수 있다. 촉감에 관해, 공간에 관해, 색에 관해, 형태에 관해, 그가 신체적으로 경험한 감각에 대한 사유와 성찰을, 그의 풍경 그림은 표상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전시 제목이 환기시키는 것처럼, 그가 세계에 대해 바라보고 사유하는 일련의 경계를 유연하게 드러내 보여주기도 한다. (2021.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