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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동정] 33대 총동문회장 이자 건축공학과 71학번 인간과 역사를 마주한 건축가 '이광만'

관리자 │ 20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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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관심 가진 통영국제음악당(2013)부터 대화가 풀려 나갔다. 경남 통영에는 물적 토대인 음악당 이전에 음악제가 있었다. 음악당 건립은 통영이 배출한 세계적 현대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을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1967년 소위 '동백림' 사건으로 국내로 강제 송환되어 1969년 해외 추방된 윤이상은 살아서는 통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윤이상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 밤낚시를 나가 배 위에 앉아 물고기가 헤엄치는 소리나 배에서 배로 이어져 나가는 어부들의 침울한 남도창을 들었다. 수면이 그 울림을 멀리 전해주었고, 바다는 공명판 같았으며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윤이상; 상처 입은 용')

경남 통영시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나 스위스의 루체른 페스티벌을 벤치마킹해 국제음악 휴양 도시를 목표했으나 걸맞은 인프라스트럭처를 갖지 못했다. 통영시는 2004년 세계 최정상의 뉴욕 필하모니를 초청했으나 필하모니는 시설 미비를 이유로 '공연 불가'를 알려왔다. '시설'은 전용 비행기가 인근에 착륙할 공항을 포함한 공연장, 호텔이었다.

통영국제음악당은 위치 선정부터 논란이었다. 이광만은 옛 충무관광호텔, 통영시 도남동 1번지 현재의 자리에 섰을 때 겁부터 났다. 윤이상 음악 세계를 그대로 전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건축가로서, 약간의 터치만 있으면 되는 곳이라고 보았다.

공연장은 세계 최신의 말굽형, 빈야드(포도밭)형 디자인으로 가야 된다는 여론이 비등했으나 음향 전문가 주장대로 직사각형 형태로 풍부한 반사음을 구현하는 슈박스(shoebox)로 결정했다. 평면을 보면 밋밋하다. 음악당의 본질은 음악을 드러내는 풍경이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건축적 형태는 항구를 드나드는 고깃배를 따라다니는 갈매기가 떠 있는 형상을 이입시켰다.

통영국제음악당은 아시아 대표 음악축제인 '통영국제음악제'와 '국제음악콩쿠르'를 세계적 음악축제로 발전시키고자 추진한 사업이다.

음악당은 3만3058㎡ 대지 위에 연면적 1만4618㎡, 지상 5층 규모로 전자악기를 사용하지 않는 어쿠스틱 사운드(acoustic sound)를 중심으로 하는 1300석의 클래식 콘서트홀과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가능한 300석 규모의 블랙박스 공연장으로 구성되었다.

음악당 재정 자립과 활성화를 고려한 건축 디자인은 음악제 사무국, 예술감독 등 전문가와의 치열한 토론을 통해 현실적이면서도 전략적인 공간 계획으로 나타났다. 메인 홀은 클래식 공연장 쓰임으로 한정했고, 블랙박스 공연장은 대관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공연과 행사 유치를 통해 가변무대-객석시스템의 차별화를 적용하였다. 지역 문화예술단체와 시민들에게 참여 기회를 확대한 공공성도 고려했다. 공연 없는 기간을 감안해 주변 통영을 즐길 수 있는 카페테리아와 휴게 공간을 고려했다.

네덜란드 암스텔담 콘서트헤보우, 오스트리아 빈 무지크 페어라인(Wiener Musikverein), 루체른 KKL 등을 참고했으며 최종적 음향 지표인 잔향 시간, 명료도 등을 고려한 설계에 1년 반이 걸렸다.

건축가 이광만 /사진 제공=이광만
사진설명건축가 이광만 /사진 제공=이광만
건축가 이광만은 대학에서 온라인으로 '건축가로 살아가기'를 강의한다. 인터뷰하면서 그는 종종 강의 노트를 펼쳐든다. 한국은 20세기 초까지도 건축(architecture)이라는 말이 없었다. 1920년대 일본에서부터 '건축(建築)'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르코르뷔지에에게서 배운 김중업(1922~1988), 일본 도쿄예대와 도쿄대 출신의 김수근(1931~1986)이 실천적 건축가였다. 일본 와세다대 출신의 정인국(1914~1974)은 대학 건축 교육의 기틀을 다졌다. 미국 하버드대 출신의 김성국(1937~2010)은 국내 현실과 맞지 않았다. 이광만은 대학 4학년 때 미스 반데어로에가 학장을 지낸 미국 일리노이공대(ITT) 출신 김종성(1935~ )으로부터 설계를 배웠다. 김종성은 서울 힐튼 호텔 설계를 맡아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김중업으로부터 르코르뷔지에를, 김수근으로부터 일본 건축을, 김종성으로부터는 미스 반데어로에를 받아들였다. 다양한 건축 계보는 한국을 40여 년 만에 대형 건축사무소만 10여 개에 이르는 수준으로 폭풍 성장시켰다.

이광만은 학생 군사교육 '교련' 철폐 운동이 벌어진 1971년 대학에 입학했다. 근대건축가인 르코르뷔지에가 뒤늦게 본격 조명되던 1983년, 정림건축과 일본 유학과 현지 실무를 거친 김자호, 정림건축 이광만, 공간의 이범재가 '간삼건축'을 창립했다.

어떤 건축사무실이어야 하느냐를 고민했다. 김수근, 김중업, 김종성 등 스타 건축가 1인 체제를 지양하기로 했다. 파트너십, 건축의 본질 추구, 각자의 한계와 재능을 인정한다는 게 합의 사항이었다. 당시 파트너십 경영체제는 '원도심 건축'이 유일했다.

건축은 사색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대상이라고 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연 로버트 벤추리(Robert Venturi·1925~ )가 1972년 스티븐 아이즈너(Steven Izenour)와 공저로 '라스베이거스의 교훈: 건축적 형태의 망각된 상징주의(Learing from Las Vegas : the Forgotten Symbolism of Architectural Form)'를 출판한다. 건축 디자인에 있어 통일성보다는 복잡다단한 모순이, 모더니즘의 형식주의보다는 역사성(history)과 지역성(vernacular)을 강조하는 건축의 문맥(contextualism)을 주장했다. 역사성은 팩트(fact)를, 지역성은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생겨난 삶의 양식 전반을 기반으로 한다.

간삼을 론칭시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광만은 이 책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근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건축 현실에 대한 해법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원서 강독을 통해 자신만의 건축론을 단단히 할 수 있었다.

간삼건축은 신입 직원을 1년 동안 도면 그리기 등 교육만 시킨다. 1988년부터 15년간 니켄 세케이(Nikken SekkeiI·日建設計·1900~ ), 니혼 세케이(Nihon Sekkei), 도큐 세케이(Tokyo Sekkei·東急設計)에 실무 연수 및 교류 목적으로 직원들을 파견했다. 니켄 세케이와의 제휴는 서울 포스코 센터(1995), 포항 포스코 역사박물관(2003), 포스코E&C 인천 송도 사옥(2010), 포스코 중국 베이징 사옥(2015) 수주로 이어졌다.

니켄 세케이는 신일본제철(新日本製鐵) 공장들을 설계하였고, 신일본제철과 제휴사인 포스코도 공장 설계를 맡기게 되었다. 니켄 세케이 제휴사인 간삼건축은 포스코센터(1995) 실시 설계를 담당했다. 니켄 세케이는 포스코센터 주변의 트레이드타워(무역회관), 도쿄 롯폰기힐스를 디자인하였다.

간삼건축은 니켄 세케이와 30여 년간 제휴를 잇고 있다. 양사 간 디자인(형태) 설계는 거의 대등한 위치에 와 있으나 고급 기술 자문은 여전히 받고 있다.

1990년대 초까지도 한국은 호텔, 백화점조차도 설계할 능력이 없었다. 일본 회사가 기본 설계를 맡고 실시 설계를 한국이 배웠다. 핵심은 산업의 이동에 따른 신업태에 대한 이해 및 공간 구성 경험이 없어서였다. 중국은 동일한 흐름으로 우리와 일정한 격차를 보여준다. 일본에서 구조, 안전성 등 현대건축의 본질을 배운 한국 건축계는 2000년대부터는 건축 설계를 수출하고 있다.

포스코역사관 /사진=포스코 홈페이지
사진설명포스코역사관 /사진=포스코 홈페이지
포스코 역사관(2003)은 타원형의 박물관이다. 이광만은 철이 갖고 있는 물성을 최대한 활용했다. 자동차에 주로 쓰이는 냉연강판, 아연강판, 건설 현장에서 쓰이는 H빔 등 다양한 철을 사용(cladding)했다. 철은 보다 가볍고 얇은 건축물을 만들 수 있는 수단이다. 재료와 구조의 물리적 경량화는 시각적으로도 건물을 무게가 없는 추상적 오브제처럼 보이게 만든다. 철은 건축물을 만드는 재료이자, 다른 한편으론 비물질화된 건물을 만들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대형 프로젝트는 설계 인력만 100~200명이 참여한다. 구현된 건물이 특정 건축가의 작품일 수는 없다. 프로젝트는 직책만 남아 있다. 2000년 초까지 간삼건축은 대부분 집단으로 작업한 작품에 대해 의도적으로 책임 건축가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이후 교육적 차원에서 이름을 명기한다.

1997년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이 제정되면서 산업으로서 건축 설계가 정의되며 범위가 정해진다. 기획(planing), 설계(design), 건설관리(CM), 시설관리(FM) 등 4개 분야다. 이 법과 관련해 2005년부터 대학 건축학부 학제가 바뀐다. 건축대학이 5년제, 학부 비전공자는 건축 대학원 3년 과정이 골격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국가로서 해외 대학과의 교과과정 상호 인증을 받기 위해서였다.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은 건축 설계 업무 영역 확장을 위해 한국건축가가협회장 재임(2012년 6월~2014년 2월) 시절 확립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건축이라고 하면 설계(design)만 얘기한다.

"표준에 눌려서 창의가 사라져서는 안된다. 기술을 범용화시켜야 더 나은 표준을 만드는 게 아닌가." 자신의 세대는 표준을 벗어나면 안된다고 배웠다. 표준을 규제로 이해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옛날식 신군사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건축사무소는 도제(徒弟) 방식을 따르는 아틀리에, 서비스산업 규모를 갖춘 대형 사무소로 구분된다. 이광만은 대형 사무소 경영자 출신의 건축가다. 건축단체는 크게 건축가협회, 건축사협회, 건축학회로 구분된다. 건축사협회는 자격증을 가진 건축인, 건축가협회는 대체로 건축 설계 업무를 사업으로 이어가는 건축인들을 말한다.

보헌빌딩 /사진=간삼건축 홈페이지
사진설명보헌빌딩 /사진=간삼건축 홈페이지
보헌빌딩(2005)은 서울 북촌 한옥 지구와 경복궁, 창덕궁 등 역사적 건축물이 밀집한 장소에 위치해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의 갈등과 고민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주변 경관과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해 재료와 색채를 고려했고, 공간 조직을 위해 전통 건축에서 드러나는 중정(中庭) 형식을 도입했다. 이중의 공간적 두께로 표현해 도시 안에 사적 침묵 공간을 이끌어내려고 했다.


형태만으로 한옥을 흉내 내는 것은 지역 정서를 해칠 우려가 있기에 조심했다. 업무 시설 기능을 충족하면서도 전통 한옥의 공간 배치 원칙에 따른 평면 구성을 통해 사용자들의 친숙도를 높였다. 보헌빌딩은 한옥 특유의 절제되고 자연적인 질감의 전통 재료와 나지막이 둘러친 건물 주변의 기와 담장을 통해 북촌마을과 자연스럽게 융화된다.

건물 중심 진입로로 형성된 열린 축은 건물에 들어선 이의 시선을 자연스레 유도하고, 오르막 지형에 따른 단의 차이는 지하 1층으로 들어서기에 용이하다. 3층 발코니와 옥상에서 북촌마을 경관을 조망하도록 했다. 지하 3층~지상 3층, 대지 364평, 건축면적 218평, 연면적 1206평이다.



매일경제-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21/04/416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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